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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꼬리를무는그날이야기 딱 한번만 더 유괴범의 모래성 범인 홍순영 한국판 리플리증후군 명문 여대 괴담 곽재은 유괴 살인사건 꼬꼬무3 51회 출연진 김혜윤 홍석현 자이언트 핑크 10월 27일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시즌3 51회 2022년 10월 27일 방송 출연진 나이 프로필 
출연 : 방송인 장성규, 개그우먼 장도연, 배우 장현성

김혜윤 홍석현 자이언트 핑크

아이가 유괴됐다
유괴범을 잡아라 
서울의 공중전화 
계좌번호 1901480 이름 이상민 
그놈 목소리 
베일에 싸인 범인
단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다 
난이도 최강 검거 작전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범인의 정체 

딱 한번만 더 
유괴범의 모래성 

개요 

1990년 6월 25일에 일어난 아동 유괴 사건. 당시 23세의 젊은 여성이 범인이었던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유괴 
1990년, 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선수촌아파트에서 살던 곽재은 양(1984년생, 당시 6세)은 단지 내의 유치원을 다니고 있었다. 아파트 단지 내의 유치원이었기 때문에 곽재은 양은 혼자서 등하원을 했다.

그런데 6월 25일, 집에 돌아와야 할 12시가 되어도 곽재은 양은 돌아오지 않았다. 걱정이 된 엄마는 유치원까지 갔지만, 교사는 "어머니가 전화를 해서 30분 전에 보내달라고 하지 않으셨어요?"라고 되물었다. 어머니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계속 수소문하다가 오후 5시에 경찰에 유괴 신고를 했다.

금품요구 

다음날인 6월 26일 오후 5시에 젊은 여성이 곽 양의 집에 전화를 걸어 "재은이를 데리고 있으니 신고하지 말고 5천만 원[2]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사건을 맡은 서울강동경찰서는 이를 추적하여 공중전화에서 발신했음을 밝혀냈다. 이후 10분 뒤에 다시 전화해서 계좌번호와 가짜 이름으로 만든 예금주를 댔다. 곽 양의 어머니는 우선 6월 27일 오전에 500만 원, 다음 날 오전에 2,500만 원을 범인이 알려준 조흥은행 계좌에 송금했으며, 경찰은 범인을 잡기 위해 조흥은행 본점 및 서울시내 모든 지점 그리고 전산실에 형사들을 배치했다.

그 이틀 후인 6월 29일 오후에 드디어 범인이 30만 원을 인출한 기록이 포착되었는데, 형사들이 배치된 조흥은행이 아닌 국민은행(1963년) 본점의 ATM이었다. 이에 형사들에게 비상 경계령이 내려졌고 약 2시간 후 명동 롯데백화점 내부의 조흥은행 출장소 ATM에서 10분간 260만 원을 인출했다.

범인 체포 

주변 지점에 배치되었던 형사들이 바로 명동 롯데백화점의 조흥은행 ATM으로 달려갔고, 막 돌아나오던 키가 매우 작은 젊은 여성을 주목한다. 그녀가 범인임을 직감해 추적에 나선 경찰은 마침내 을지로입구역 계단에서 체포했고, 범인은 23세의 홍순영이었다.



곽재은 유괴 살인 사건의 범인 홍순영. 체격이 매우 왜소하다. 단, 옆에서 홍순영을 붙잡고 있는 두 여성은 강력계에서 근무하는 형사들로 업무 특성상 일반 여성보다 체격이 건장한 편이다.

홍순영은 "공범이 있다"고 거짓진술을 했고[5], 여기에 낚인 경찰은 홍순영을 공범이 기다리고 있다는 서울역까지 데려가서 공범을 유인하려고 했으나, 홍순영은 달리는 열차에 뛰어들어 투신자살을 시도했다. 그러나 기관사가 급정거를 하여 경상만을 입었다.

재은이가 어디 있는지 추궁했으나 동문서답을 하던 홍순영은, 결국 "숙명여자대학교 한 건물의 물탱크 뒤에 재은이의 시신을 은닉했다"고 자백했다.

범행 동기와 과정 



범인 홍순영은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으나 허영심이 강한 성격으로, 윤리의식이 희박해 대학입시 과정에서 번번이 미역국을 먹자 가짜 숙명여대생 행세를 했다. 위조 학생증까지 가지고 다녔고, 집에는 가짜 합격증과 등록금 고지서를 내놓았다. 장장 4년 내내 태연히 도강을 하며 모든 수업을 다 듣고, 숙명여대 MT 등 행사에도 빠짐없이 참여해 왔으며 졸업식까지 참석했다. 이때는 전산화가 완전히 되지 않은 시대였기 때문에 이런 가짜 학생 행세가 가능했다.이로 인해 유괴사건 보도 초반에는 숙명여대생이 범인이라는 오보가 나올 정도였다. 심지어 가짜 졸업 후에는 또 KBS 기자로 취직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공상허언증의 사례.

홍순영은 처음에는 숙명여대생인 척 하고 다니면서 그 해에 다시 대학입시를 치러 숙명여대에 정식으로 입학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학교생활에 바쁘고 자신의 정체가 들킬까봐 모든 상황에 거짓으로 대응하는 데 신경을 쏟느라 공부를 할 시간이 없었다.[8] 또한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시간이 흐를수록 주변에서도 홍순영이 정말 숙대생인지 의심하는 시선이 강해졌고, 홍순영이 가짜 숙대생이라는 소문이 점점 퍼져 나갔으며, 마지막에는 혼담이 오가고 있던 남자친구에게까지 그 사실이 알려졌다.

모든 것을 거짓으로 살아온 4년이 넘는 세월은 홍순영의 마음을 극단적으로 병들게 했다. 게다가 (가짜)학생 시절에는 실제로는 대학 등록을 하지 않았으므로 등록금으로 쓰라고 준 돈을 통 크게 펑펑 쓰고 다녔지만, (가짜)취직을 한 후에는 더 이상 돈을 받을 수 없고 그러기는커녕 집에 월급을 갖다줘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고졸 백수였으니 돈 나올 곳은 물론 없었다. 점점 홍순영의 상황과 생활은 악화되었다. 게다가 남자친구와의 결혼이 이런 상황을 끝낼 기회였는데(결혼했으니까 직장을 그만뒀다는 핑계), 남자친구의 부모는 그녀가 키가 작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결혼을 반대했다.

홍순영은 이러한 상황에서 사이가 벌어진 남자친구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범행을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범행 당일에 유치원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유치원의 우산꽂이에 달려 있는 우산에서 곽 양의 이름을 보고 범행대상을 선정할 정도로 대담한 성격이었다.

홍순영은 허위전화로 곽 양을 유치원에서 하교시킨 후, 엄마의 지인으로 속이고 빵과 음료수를 사주며 숙대까지 유인해 전화번호 및 주소를 알아냈다. 그 후, 음악대학 건물의 후미진 곳으로 가서 목을 졸라 잔인하게 살해했다. 협박전화를 걸었을 때는 이미 곽 양을 살해한 후였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홍순영은 그렇게 남자친구에게 집착했으면서 막상 범죄를 저지르고 잡히자 공범이라며 남자친구 이름을 내세워 그가 곤욕을 치르게 만들었다고 한다.

결말[ 

당시 유괴살인은 1987년 12월에 터진 함효식 사건[9]에서 보듯이 그 동기나 과정이 우발적인 경우나 정신적 문제가 있는 경우가 아니면 연쇄살인, 대량살인, 당해 10월에 발생한 부산 새마을금고 권총 강도 살인 사건처럼 경찰관 등 고위공직자를 살해하는것과 더불어 무조건 사형이 원칙이었다. 또한 사건 1달 전인 1990년 5월에 국민학교 1학년 학생을 납치하여 5시간 동안 홍순영 자신의 부천시 자택에 감금했다가 풀어주었던 일을 벌인 적이 있고, 자신 또한 사형을 원한다고 자기 입으로 밝혀[10], 사형 판결을 받고 1991년 9월 13일 사형이 확정되었다.

동년 12월 18일 다른 8명의 사형수와 함께 사형이 집행되었다. 15시 35분 사형장에 들어온 그녀는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진 인정심문에 대답도 못하고 눈물을 쏟으며 계속 소리내어 울기만 했다고 한다. 구치소에 들어온 지 반년이 채 못 되어 집행될 것을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는데 교도관이 면담 있다고 하며 데리고 나오니 전혀 모른 채 왔으며, 아무런 마음의 준비 없이 와서 갑자기 처형되니 이렇게 된 것.

"남길 유언이 있으면 말하라"라고 소장이 권해도 울면서 고개를 저으며 거부했다. 그리고 김우성 신부가 가톨릭 의식을 진행하는 동안에도 계속 흐느껴 울기만 하다가 작은 소리로 '예'라고 한 정도였다. 고해성사 때에야 겨우 "피해자 가족에게 용서를 빕니다. 부모님께 너무 큰 죄를 지었습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종교의식이 끝나자 곧바로 처형되어 15시 50분에 집행, 16시 정각에 숨을 거두었다. 시신은 파주시 나자렛 묘원에 묻혔다.

여담 

  • 사형집행 현장을 참관한 문장식 목사에 따르면, 그녀는 작은 몸매에 앳되고 순하고 착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저런 사람이 어떻게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사형수들을 많이 보아 왔던 그도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고 한다.
  • 사형이 꽤 빨리 집행된 편에 해당한다. 대법원의 사형 확정 판결이 1991년 9월 13일이고 사형이 집행된 날짜가 동년 12월 18일임을 감안하면 3개월(97일) 만에 사형이 집행됐다.[15] 동년에 발생한 사건들 중, 샛별룸살롱 살인 사건의 범인들과 같이 처형되었다.
  • 2008년 tvN의 범죄 재연 드라마 범죄의 재구성에서도 <영혼을 죽이는 범죄, 유괴>라는 부제로 이 사건을 다루었다. 피해아동을 서민정으로, 홍순영은 유희선으로 가명으로 나왔다.
  • KBS2 속보이는 TV 인사이드 2018년 11월 1일 방송분에서도 다뤘다. 당시 사건을 담당한 서울강동경찰서 김임용 전(前) 형사가 등장해서 검거 당시를 설명했다.[ 
  • 범인이 학생 행세를 했던 숙명여자대학교에서는 사건 이후 많은 시간이 지난 시점에서도 이 사건이 꽤 유명하며, 특히 재은 양이 살해되고 유기된 음악대학 건물에서는 아이 귀신이 나온다는 괴담이 전해지고 있다. 범행 장소를 음악대학 건물로 택한 이유는 피해자가 지르는 비명소리를 악기소리로 가리기 위해서였다.
  • 당시 어떤 기자 중 한 명은 자신의 아내가 숙대 출신이어서, 아내가 "범인은 숙대생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덕분에 "범인이 숙대생"이라는 오보가 빗발치는 가운데서 올바른 정보를 기사에 쓸 수 있었다는 뒷이야기가 있다.
  • 2021년 8월 25일, KBS2의 표리부동에서 <친근한 접근 아동 유괴 범죄>라는 부제로 이 사건을 다루었다.
  • MBC 심야괴담회 25회 방영분에서 <그녀를 믿지 마세요> 라는 제목의 사연으로 등장했다.
  • 1990년에는 유괴살인이 3건이나 있었는데, 구글에 1990년 유괴사건을 검색하면 이 사건이 메인으로 뜰 정도로 매우 유명한 사건이다.
  • 나머지 두 사건의 범인들 4명 중 3명에게도 사형이 확정되었는데 이들 3명은 홍순영과 비슷한 시기에 사형 확정 판결을 받았으나 이들 중 문경한은 홍순영의 사형 집행 1년 후인 1992년 12월 29일에, 전기철과 김무경은 홍순영 사형 집행 이후 약 2년 10개월 후인 1994년 10월 6일에 사형이 집행된 것을 감안하면 홍순영의 사형이 타 유괴살인범에 비해 굉장히 빠르게 집행됐음을 알 수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3 꼬꼬무 시즌3 51회 딱 한번만 더 - 유괴범의 모래성 편에서는 게스트 배우 김혜윤 자이언트 핑크 홍석천이 등장한다 이번사건 재조명은 1990년 유치원생 곽재은양 유괴 살해 납치 살인사건 일명 홍순영 사건 대학생 여대생으로 위조유괴사건 재조명한다 재은이 엄마는 낮 12시면 끝나는 유치원 시간에 맞추기 위해 10분 전에 집을 나섰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이었지만, 재은이와 3시간 남짓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는 이 시간은 늘 엄마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드디어, 왁자지껄한 소리와 함께 병아리를 닮은 노란색 바지와 가방 무리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집에 돌아와야 할 12시가 되어도 곽재은 양은 돌아오지 않았다. 걱정이 된 엄마는 유치원까지 갔지만, 교사는 "어머니가 전화를 해서 30분 전에 보내달라고 하지 않으셨어요?"라고 되물었다. 어머니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계속 수소문하다가 오후 5시에 경찰에 유괴신고를 했다.

다음날인 6월 26일 오후 5시에 젊은 여성이 곽 양의 집에 전화를 걸어 "재은이를 데리고 있으니 신고하지 말고 5천만 원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사건을 맡은 서울강동경찰서는 이를 추적하여 공중전화에서 발신했음을 밝혀냈다. 이후 10분 뒤에 다시 전화해서 계좌번호와 가짜 이름으로 만든 예금주를 댔다.곽 양의 어머니는 우선 6월 27일 오전에 500만 원, 다음 날 오전에 2,500만 원을 범인이 알려준 조흥은행 계좌에 송금했으며, 경찰은 범인을 잡기 위해 조흥은행 본점 및 서울시내 모든 지점 그리고 전산실에 형사들을 배치했다.

주변 지점에 배치되었던 형사들이 바로 명동 롯데백화점의 조흥은행 ATM으로 달려갔고, 막 돌아나오던 키가 매우 작은 젊은 여성을 주목한다. 그녀가 범인임을 직감해 추적에 나선 경찰은 을지로입구역 계단에서 체포했고, 범인은 23세의 홍순영이었다.

 

재은이가 어디 있는지 추궁했으나 동문서답을 하던 홍순영은, 결국 "숙명여자대하교 한 건물의 물탱크 뒤에 재은이의 시신을 은닉했다"고 자백했다. 경기도 부천에서 제법 규모가 있는 상업을 하는 부친의 4남매 중 셋째로 태어나 남부럽지 않게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 하지만 친구들과의 사이에 경쟁과 질투심이 많았던 홍순영은 대학 입시에 실패하자 합격한 다른 친구들에게 지기 싫다는 이유만으로 숙명여대 정외과에 합격했다는 ‘거짓말’을 하게 된다. 그 거짓말을 들키지 않기 위해 합격통지서와 등록금 고지서를 조작해 부모에게 내밀고, 등록금을 타내고 용돈을 받아 실제 학생처럼 숙명여대 정외과에 다니기 시작했다.

MT 등 학교와 과 행사에도 빠짐없이 참가한 그를 ‘가짜 대학생’으로 의심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 사이에 재수를 해 정식으로 합격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리라 생각했던 그녀는 ‘가짜 대학생’ 신분을 들키지 않기 위해 모든 상황마다 거짓으로 대응하는 데 집중하느라 대입 준비는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가짜’로 살아온 4년간의 삶은 홍순영의 마음을 극단적으로 병들게 했고, 주변에서 의심하는 사람도 늘어났다. 결국 1년 가까이 사귀며 결혼까지 생각해온 회사원 남자친구에게 홍순영의 지인이 ‘홍순영은 가짜 대학생’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게 된 후 그는 극단으로 치닫게 되었다. 큰돈을 마련해 ‘돈의 힘’으로 남자친구의 마음을 사보려 했던 것이다. 홍순영은 수사와 재판을 받는 내내 ‘제발 사형시켜주세요’라며 뒤늦은 후회를 했다. 1991년 12월18일 원하던 대로 사형이 집행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Posted by 아리아리동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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